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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삽질

밤늦게 학교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시계를 보니 11시 30분. 배는 고프고 빨리 집에 가서 밥해먹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어젯밤에 끓여놓았던 김치찌개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방문앞. 드디어 집이구나. 빨리 밥 앉혀야지… 하는데 주머니에 열쇠가 없다. 이런 X장. 어쩌지… 학교에 두고 왔을까? 버스에 흘렸나? 버스 안에서 가로등 불빛 번지는 걸 찍겠다고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냈던 생각이 났다. 낙성대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도중,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연구실 서랍에 열쇠 꽂혀 있는지 전화로 물어봤지만 열쇠는 없댄다. 그럼 분명 버스에 흘린 것이 틀림없……어야 할텐데;;; 아니라면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이름도 전화번호도 안 붙어 있는 열쇠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버스가 한 대 서있다. 기사분이 안계시네. 혹시 이 버스가 내가 타고온 버스일까? 들어가서 내가 앉았던 자리를 확인해 봤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는다. 이 버스는 내가 타고온 버스가 아님에 틀림없……어야 할텐데.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기사분이 오셨다. “저 혹시 이 버스가 노천강당에서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인가요? 제가 그 버스에 뭔가 흘린 것 같아서요.” “노천강당에서 11시 30분이면, 공대에서 11시 25분에 출발한 차일텐데.. 이 차는 그 차가 아니야.” “혹시 차고에…” “차고에 내려줄테니까, XX05번 번호판을 단 버스를 찾아봐.” 꽤 신기하네. 앞 버스를 차번호판으로 기억하고 계시네.

차고로 뛰어들어가니 한 분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제가 노천강당에서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에 열쇠를 흘린 것 같아서요.” “어… 그 차는 아직 안 왔어. [낙성대 도착한 버스는 차고로] 바로 오는게 아니고 기숙사까지는 갔다가 돌아오거든.”

차고엔 버스가 가득했다. XX07, XX02, XX03, XX04 차번호판을 단 버스들이 눈 앞에 보였다. 가만 보니 이 버스들은 XX0까지 번호가 똑같았다. 한 버스회사의 차량번호가 이렇게 차례대로 매겨져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아까 기사분이 앞에 출발한 버스의 번호판을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인 셈. XX05번 버스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5분 쯤 기다리다보니, 저기서 한 기사분이 버스를 세우고 내려오신다. “이 친구는?” “뭘 두고 내렸대.” 지갑을 든 손으로 “지갑?” “아니 열쇠래. XXX(기사분 이름) 차는 왔어?” “어 저기. 불켜져 있는 차” 그분은 자기가 내린 버스 옆의 차를 가리켰다.

난 그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번호판이 보인다. XX05. 아까 그 기사분 말이 정확했다. 버스를 정리하고 있는 한 기사분이 계신다. “저기 차좀 둘러봐도 될까요? 제가 열쇠를 흘리고 내린 것 같아서요.” “진작좀 얘기하지” 하시면서 차 핸들 뒤의 통을 뒤지신다. 난 아까 앉았던 자리를 기웃하는데, 기사분이 “거긴 없어” 하신다. 아.. 기사분이 챙겨두셨구나.

이렇게 열쇠를 찾아 무사히 집문을 열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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