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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의철학] 기든스와 그의 방법론: ‘The Constitution of Society’, Gidden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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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용 요약

이 책은 ‘구조화(structuration) 이론’이라는 자신의 독창적인 사회이론에 대한 소개서이다.

기든스가 ‘구조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이유는 대립하는 두 사회이론 ― 객관적 결정론과 해석적 사회학 ― 모두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첫째, 특히 기능주의와 구조주의로 대표되는 구조결정론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사회이론은 구조를 행위의 외부에 설정함으로써 행위와 구조의 역동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이다. 둘째, 해석적 사회학의 경우에는 행위와 의미에 대한 미시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에 가해지는 제약과 제재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는다.

객관적 결정론과 해석적 사회학을 동시에 거부하려 한 기든스는 결정론과 해석적 사회학에 내재된 이원론(dualism)을 비판하면서 ‘구조의 이중성(duality)’이라는 대안적 개념을 내놓는다. 여기서 구조의 이중성이란 사회구조가 반복적으로 조직하는 실천의 ‘매개’이자 ‘결과’라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회체계의 구조적 속성은 행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생산과 재생산에 지속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조화란 바로 사회적 행동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구조지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구조의 이중적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기든스는 구조와 체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구조’가 사회체계의 속성으로 구성된 규칙과 자원을 말한다면, ‘체계’는 규칙적인 사회적 관행으로 조직된, 행위자들 및 집합체들 사이의 재생산된 관계를 지칭한다. 여기서 규칙은 의미의 구성과 사회적 행동양식의 제재에 관련되어 있으며, 자원은 사회적 행위의 조정에 연관된 ‘권위적 자원’과 물질적 세계의 통제에 연관된 ‘할당적 자원’으로 나뉘어진다. 요컨대 구조는 사회적 행위의 생산 및 재생산에 사용되는 동시에 체제재생산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제약인 동시에 가능성이다.

이러한 구조의 이중성 논의는 무엇보다도 행위의 자율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구조의 이중성에 따르면, 행위자는 구조의 규칙과 자원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임과 동시에 규칙과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기든스는 행위자의 이런 능력을 성찰적 감시(reflexive monitoring)로 개념화하는데, 이러한 행위의 성찰적 감시가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이 결과가 피드백을 통해 행위의 인식하지 못하는 조건을 이루게 된다고 본다.[ref]예를 들어, 내가 올바르게 영어를 말하고 쓸 경우, 그것의 당연한 결과 중 하나는 전체 영어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다. 영어를 바르게 말하는 것은 나의 의도이지만, 영어의 재생산에 대한 기여는 나의 의도가 아니다.[/ref]

행위자는 ‘행위하는 동안 자신이 행하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으며, 이러한 ‘성찰적(reflexive) 능력’은 부분적으로는 ‘담화적 의식‘에 그리고 대부분은 ‘관행적 의식(practical consciousness)’ 수준에 기반해 있다. 기든스에게 있어 재생산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관행적 의식’은 ‘담화적 의식’과 ‘무의식’과 구별되는 행위자가 사회생활에서 활용하는 암묵적 지식을 말하며, 매일매일의 사회생활을 반복하는 ‘관례화’ [ref]일상생활에서 신뢰와 존재론적 안전의 느낌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심리적 기제이다.[/ref]를 지탱하는 핵심요소이다. 기든스에 의하면, 행위자는 보통 주어진 조건하에서 관행적 의식에 기반한 관례화를 통한 사회생활을 지속해나가는 동시에, 그 생활에 내재된 행위자의 성찰적 감시가 새로운 구조적 조건을 낳게 된다고 본다.

위와 같은 성찰적 행위자에 대한 개념화를 기반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공-현전 상황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기든스는 그러한 분석을 사회체계의 더욱 광범위한 측면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이기 위해 시-공간 안에서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방법에 대해 이론화하기 시작한다. 시-공간에 대한 논의는 헤거슈트란트의 시간-지리학(time-geography)에서 출발한다. 헤거슈트란트는 시-공간 범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사회유형들의 성격은 능력제약과 연결제약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기든스는 이러한 시-공간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상호작용의 무대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면의 영역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밝힌다. 성찰적 행위자는 의사소통적 행위에서 의미 유지를 위해 ‘무대’를 끊임없이 이용하기 때문이며, 무대 역시 대면의 연쇄적 특성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영역화된다.

기든스는 위의 공-현전 상황의 대면들을 ‘거시구조적인’ 사회적 속성이 만들어지는 토대로 여기거나, 그 반대로 공-현전 상황의 상호작용이 규모가 크고 오랫동안 확립되어온 제도의 견고성에 비해 덧없는 것일 뿐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기든스에 의하면, 미시/거시의 대립은 이원론의 쓸모없는 대립에 불과하며, 미시/거시의 대립은 공-현전 맥락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광범위한 시-공간 원거리화(time-space distanciation) 체계에 구조적으로 연루되는가, 다시 말해 그들 체계가 더욱 큰 시-공간 부문에 어떻게 퍼져나가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적절히 재개념화된다고 한다. 이는 사회통합과 체계통합과의 연계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에 따르면, ‘사회통합’은 공-현전의 맥락에서 행위자 사이의 교호성, 즉 대면적 상호작용 수준에서의 체계성을 의미하고, ‘체계통합’은 확장된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행위자 혹은 집합체 사이의 교호성, 즉 시간 혹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부재한 사람들 사이의 연관을 가리킨다. 체계통합 메커니즘은 사회통합 메커니즘을 분명히 전제하지만, 그것은 핵심이 되는 또다른 측면에서 공-현전의 관계에 관련되는 것들과는 구분된다.

이때, ‘사회체계’ 및 ‘사회’의 개념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기능주의와 자연주의는 ‘사회들’을 분명히 한정지워진 실체로, ‘사회체계’를 내적으로 고도로 통합된 단일체로 수용하도록 고무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들’은 사회체계인 동시에 복합적인 사회체계들의 상호교차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쉽게 구분되는 경계선이 거의 없으며, 사회체계의 체계성의 정도 또한 대단히 가변적이다.

한편, ‘구조’에 대해서는 구조적 사회학과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입장을 거부하며 새로운 개념들을 도입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적 원리’라는 개념이며 그것은 사회 전반 또는 사회적 총체의 구조적 모습을 뜻한다. 또한 모순 개념에 대해서 구조적 원리의 개념을 통해서만 사회분석과 관련해 유용하게 분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입장으로 사회변동 연구에 접근한 기든스는 ‘사회변동이론’을 찾으려는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히, 진화론적 발상 ― 구체적으로는 사적유물론 ― 이 선호해온 도식은 거부되고 해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에 회의적이라는 말이 ‘일반화’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든스는 위에서 언급한 ‘구조적 원리’, ‘사회사회체계’, ‘시-공간 경계’와 더불어 ‘에피소드’와 ‘세계시간’을 덧붙여 사회변동을 논한다. 기든스에 따르면 모든 사회생활은 ‘에피소드’의 시리즈로 제시될 수 있다. 일정한 유형의 대규모 변동과정에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나름대로 유용하게 비교가능하지만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추상화된 채 비교될 수는 없다.[ref]예컨대, 초기 국가형성을 설명하는 완벽하게 추상적인 이론들은 실패하였다. 하지만, 국가형성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요소들을 목록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한 요소들은 항상 발견되는 것은 아니고, 각각의 상대적 중요성도 에피소드에 따라 변할 수 있다.[/ref] 이에 덧붙여서 기든스가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이 ‘세계시간’의 영향이다. ‘세계시간’의 영향은 에피스드 유형에 관한 일반화를 제한하는 요소들과 관련되어 있다.[ref]예컨대, 국가형성을 설명하는 요소 중 ‘이미 존재하는 국가의 영향’을 고려한다고 생각하자. 이는 국가형성을 설명하는 ‘인구성장’, ‘전쟁’, ‘기술적 진보 혹은 잉여생산’ 등의 다른 요소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이점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상호사회체계, 시-공간 경계, ‘세계시간’ 등에 대한 이슈를 잘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ref]

기든스는 자신의 ‘구조화 이론’을 종합하면서, 자신의 이론과 조응하는 몇몇 조사연구를 제시한다. 그리고나서 자신의 이론이 함축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의미를 정리한다. 이때 ‘이중해석학(double hermeneutics)’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사회과학과 그 연구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해석적 상호작용을 말한다.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보편적 법칙이 있을 수 없는데, 이는 사회과정에 대한 성찰이 모집단에 지속적으로 개임-이탈-재개입함으로써 조사대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과학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중해석학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기술(description)’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과학의 실천적 공헌은 제한적이지만, 세상이 그들이 분석하는 세계로 걸러진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과학의 실천적 결과는 정말로 심대하다.

2. 방법론 분석 : 성찰적 행위자와 이중해석학

기든스의 ‘(The) Constitution of Society’는 구조주의와 행위이론의 대립을 주된 축으로 둘의 절충을 모색하는 자신의 사회과학 방법론인 ‘구조화이론’을 소개하는 글이다.

하이에크는 몇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지만, 기든스는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사회현상에 대한 설명에 의의를 두었다. 구조주의의 결정론과 행위이론의 주관성 모두를 거부하고자 한 기든스는 성찰적 행위자를 도입함으로써, 행위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 완전히 추상적이거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법칙은 불가능하지만 ― 일반적인 설명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구조의 영향을 언급하는 사회과학은 거의 대부분 기능주의적 설명을 필요로 했으며 행위자의 의도는 무시되곤 했다. 예컨대, 산업자본주의에서 교육활동을 거친 이후 계급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할 때, 기존의 설명에서는 산업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일정수준의 계급분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언급 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노동계급에 진입하는 노동계급의 아이들은 산업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끌려간 것처럼 묘사되고, 행위자의 행동의 의도성은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재생산 조건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설명의 난점을 폴 윌리스는 노동계급이 되는 반항아들을 성찰적 행위자로 간주함으로써 해결한다. 노동계급이 되는 반항아들은 사회구조에 수동적이 아닌 오히려 능동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들은 학교라는 사회체계와 사회속에서의 자신의 지위의 본질에 대해 상당부분 ― 더 넓은 측면에 대해서는 부정확하게 ― 간파하고 있었고, 그러한 간파는 그들의 반항적 태도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적인 반항적 태도는 ‘노동계급의 재생산’이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윌리스의 연구는 ‘반항아들’의 상황지워진 행위 맥락에서, 위에서 산업자본주의의 구조적 관계가 어떻게 행위 속에서 유지되며 또 행위에 의해 재생산되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기든스는 이러한 예를 통해, 구조로부터 행위를 혹은 행위에서 구조를 ‘읽어내지’ 않는 것,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이원론을 거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기든스는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이중해석학에서 찾는다. 성찰적 행위자를 도입함으로써, 각 행위자는 나름의 사회이론가로서 간주된다. 위의 예에서 반항아들은 학교체계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가이다. 이러한 성찰적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가 (자신 또는 사회과학자의) 이론에 영향을 받는 특징을 가진다. 기든스는 이러한 사회과학과 그 연구대상이 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해석적 상호작용을 이중해석학이라고 말한다. 만약 윌리스의 계급재생산 연구에 대해 노동계급의 아이들이 안다면 아이들의 행위패턴은 달라질 것이고 계급의 재생산조건은 윌리스의 일반화된 설명과 들어맞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폴 윌리스의 연구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인가? 오히려 기든스는 그 점이 바로 사회과학의 진정한 의미라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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