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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누리] 이해할 수 없는 물갈이연대 by red21green

민중의소리 기사를 보니 소위 물갈이연대 간사인 김정훈 교수 인터뷰가 실렸더군요. 물갈이연대가 지향하는 바는 “큰 틀에서의 깨끗한 정치”이며 당선운동 대상 인물의 선정기준은 “도덕성”, “개혁성”, “전문성”이라고 합니다. “맑은 인물로의 물갈이”라나요.

참 두리뭉실하기 짝이 없는 얘기네요. 물론 정치권에는 우리 사회가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서도 정말 몹쓸 놈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는다거나, 사기를 친다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협박하거나 폭행하는 등..그러나 “개혁성”이나 “전문성”의 문제는, 이미 진중권님도 지적하셨지만, 그런 식으로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우리 사회가 공감하는 기본적인 도덕적 기준을 충족시키고 또 개인적으로 청렴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최소한의 조사/평가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채 강행된 새만금사업과 부안핵폐기장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실질적 전투병 파병을 지지하는 사람,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비정규직 양산에 지지하지만 비정규직 차별철폐에는 반대하는 사람, 한-칠레 FTA를 지지하는 사람, 경제특구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 이주노동자가 어떤 취급을 받건 별 관심도 없는 사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노래 부르는 사람 등등은 “개혁”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그게 무슨 개혁 논의입니까? 그럴 바엔 개혁 얘기는 빼고 국회의원 도덕성회복운동 혹은 상식되찾기운동을 벌일 일이지요. 이런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만일 위와 같은 사람에게 “개혁”의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개혁성”을 가늠하는 물갈이연대의 기준은 뭡니까? 김정훈 교수는 “이념적 물갈이”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정책이념을 떠나 “개혁성”을 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가요?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기보다는 우선 시민사회운동 진영내 다수 단체들이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정책이념의 경계를 협의하고 각 정당의 정책공약을 평가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이 가장 개혁적이라 평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겠지요. 정당의 정책공약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그 정당에 소속된 개별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당 지도부와 충돌해서라도 개혁적 정책이념을 밀어 붙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면, 뭐 그런 경우에 국한해서 검토 과정을 거쳐서 특정 인물을 지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공약을 봐야죠.

물론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면 시민사회운동의 “중립적” 이미지는 상당히 훼손될 수 있습니다. 이거 너무 겁내는 건 잘못된 겁니다. 애초부터 정치/사회/경제 제 과제에 대한 개혁을 논하면서 이념적인 중립을 취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직접적인 개입이 부담된다면 각 당의 정책공약에 대한 종합 평가, 각 부문정책별 평가, 그리고 각 후보들이 자신의 당 정책공약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 등을 정리해서 발표, 유권자들이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면 됩니다.

그것도 아니고 적극적인 당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하는데.. 정책이념과 무관하게 “개혁성”을 평가하겠다? 정책이념의 입장을 넘어설 필요가 있을 때도 있죠. 여러 성향의 정치세력이 참여, 위원회를 구성한 뒤 합의안을 도출하는 특수한 경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다. 허나 그 경우도 어떤 이념적 중립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정책이념을 내걸고 모인 세력들이 타협하는 것이지요.

정책이념의 문제를 빼버리고 개혁을 논하는 왜곡된 상황을 억지로 밀어 붙이는 건 결국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에게 더 힘을 실어주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물갈이연대는 열우당과 잔민당을 중심에 놓되 민주노동당도 일부 포함시킴으로써 이러한 비판을 비껴가려고 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열우당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가겠지요.

물갈이연대는 열우당 후보들을 대거 당선운동 리스트에 올려 놓고는 그에 대해 예를 들어 파병찬성이 개혁이냐, 신자유주의 세계화 지지가 개혁이냐 하는 식으로 정책이념의 기준에 따라 비판하면 “우리는 이념적 기준에 따라 개혁성을 따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답할지 모릅니다. 이거 정말 웃기는 겁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념적이고 열우당은 탈이념적입니까? 열우당도 열라 이념적이에요. 그 정책이념의 내용이 민주노동당보다 보수적인 것일 뿐이지.

제가 보기에 “이념적 물갈이는 없다”라는 물갈이연대 김성훈 교수의 발언부터 이념적입니다. 주어진 개혁 사안들에 대해 분명히 존재하는 정당간 정책이념의 차이를 무시하고, 개혁을 철저히 개별 인물의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사회/정치/경제/노동/여성/환경 등 각 의제들에 제시된 진보적 대안의 차별성이 묻혀 버리게 하고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훨씬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 이게 어떻게 이념적인 게 아닙니까.

또 “전문성”은 뭘 얘기하자는 겁니까?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이제까지 줄곧 주장해온 바가 바로 정책이념정당으로의 전환입니다. 각 정당이 나름의 정책이념에 따라 공약과 대안을 제시하고 그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의 입법과 시행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 중요하지, 개별 국회의원의 전문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닙니다.

설사 국회의원 개개인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합시다. 변호사/검사/판사, 대기업 임원, 정부관료, 벤처사업가, 교수 등의 출신은 노조 위원장 출신보다, 농민운동가 출신보다 더 전문성을 지니고 있습니까? 일반화해서 얘기할 수 없지요. 에를 들어.. 경제/산업/농업/노동/복지 등의 분야에 대해 딱히 거시정책적 관심을 가져오지 못한 변호사/검사/판사/대기업 임원/정부관료/벤처사업가/교수 등이라면 자신들의 경험이 나름대로 유용할 수 있을지라도 노동조합/농민운동 활동가에게 배워야 할 게 오히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럼 지금 무슨 기준으로 어떤 “전문성”을 따져보겠다는 겁니까? 혹 CEO형 정치인 같은 내용도 없는 쓰레기 얘기를 되뇌이는 것은 아니겠지요?

중요한 것 다 빼먹고 “큰 틀에서의 깨끗한 정치”, “맑은 인물로의 물갈이” 도대체 뭔 얘깁니까? 참 나.. 차라리 모두 열우당에 들어가서 열우당이 좀 더 개혁적인 정당이 되도록 노력하시던지 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진보누리] 이해할 수 없는 물갈이연대 by red21green”의 1개의 댓글

  1. ‘당선운동’ 못할 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거운동을 꼭 당원과 돈받고 하는 자원봉사자(-_-;)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선거라는 공간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다른사람을 설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공권력은 당선운동 하도록 놔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4년 현재’, 고작 ‘맑은 인물로의 물갈이’가 얼마나 의미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라크파병문제, 각종 노동문제, 카드부실 등 경제문제 등에 대한 입장과 그 기저에 깔린 이념의 차이를 무시하고서 단순히 ‘깨끗하고 전문적인’ 인물로의 물갈이라니… 이건 총선을 농락하는 행위이다.

    왜 농락이냐고? 그건 자신들의 기준을 ‘중립적’이라고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이사람 저사람을 이런 기준으로 지지한다고 하면 그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가치중립적인 기준으로’ 이사람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말하면… 이건 거짓말이라는 거다.

    이사람들 그냥 솔직하게 ‘난 이정도의 입장을 가진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열우당내 개혁파 지지한다’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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