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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우리…간병하게 해주세요: 서울대 병원의 무료소개소 폐지로 일자리 잃은 간병인들… 환자 보호자들도 계속 돌보게 해달라 호소 by 최혜정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5일, 병원에서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간병인 김아무개(48)씨에게 “엄마 앞으로 왔다”며 아들이

우편물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뜯어보던 김씨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8년 동안 일해온 ‘서울대병원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9월1일자로 폐쇄한다는 내용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폐쇄한 지 5일이나 지났지만 본인에게는 그동안 아무 통보도

없었다. 하루 24시간에 5만원씩, 한달에 120만원을 벌어 두 아들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던 김씨는 이렇게 ‘직장’을 잃었다.


사진/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이 지난 12월2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파병 반대집회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취약계층의 여성 가장이 대부분인 이들은, 서울대병원이 지난 9월1일자로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폐쇄하면서 ‘직장’을 잃었다.(류우종)

유료 소개소의 서비스가 더 낫다고?

서울대병원이 9월1일 ‘간병인 무료 소개소’를 폐쇄하면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서울대병원 간병인 무료소개소는 지난

1988년부터 간병인을 자체적으로 모집하고 환자에게 소개하는 중개소 역할을 해왔다. 서울대병원은 공채한 간병인을 대상으로 매년

2차례의 간병교육과 인성교육 등을 진행하며 자체적인 간병인을 길러왔다. “유료소개소에서 들어온 간병인들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무료소개소를 만들었던 서울대병원은 그러나 무료소개소를 폐쇄하고, 두곳의 유료 소개업체를 선정해 운영 중이다. 한곳은 용역 소개업체이고

한곳은 파견업체다.

서울대병원이 내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보호자들에게서 많은 ‘민원’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그동안

간병인들을 일률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웠고, 간병인에 대한 불만이 병원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환자들에게 더 나은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검토 끝에 유료소개소로 전환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서울대병원은 “그동안 간병인에 대한 민원이

많았다”며 소개소 폐쇄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간병인들은 “병원쪽이 간병인들의 노조 가입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김진수)


그러나 서울대병원이 선정한 두곳 중 하나는 지난 10월27일부터 한달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영업정지 처분이 1년 이내 같은 사안으로 2번 이상 지적을 받을 경우 내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대병원이 소개업소를

선정하는 과정도 엄밀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은 ‘보호자들의 민원 제기가 직접적인 이유’라는 병원쪽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대병원은 간병인이 보호자에게 부당하게 웃돈을 요구하거나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접수되면 간병인에게 시말서를 쓰도록

하고, 이것이 세번 이어지면 자동 탈락시켰다. 병원 차원에서 간병인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정금자 보건의료산업노조 간병인지부장은 “유료소개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소속된 간병인들에게 매달 회비를 받고, 소속

간병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주겠다며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등 중간 착취가 심하다”며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과다 임금 청구로 이어지기 때문에,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 간병인들이 서비스의 질과 ‘여러 면에서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병원도 인정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병원쪽이 무료소개소를 폐쇄하겠다는 방침은 지난 2000년부터 흘러나왔다. 당시 병원 관계자에게서 “무료 간병인 소개소를

없애고 유료 업소를 선정한다”는 얘기를 들은 간병인들은 곧바로 상조회를 만들었다. 목소리를 모으면 더 낫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였다.

병원쪽과의 면담 끝에 “상조회를 해산하면 소개소를 폐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냈고, 간병인들은 곧바로 상조회를 해산하고 당시

회비로 모인 50만원을 서울대 분당병원의 건립기금으로 내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노조 가입 간병인에 강한 거부감

하지만 ‘소개소 폐쇄설’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신분 안정에 불안을 느낀 간병인 10여명이 2001년 비밀리에 보건의료산업노조에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가입했다. 병원쪽은 지난 2002년 초 18명을 뽑는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신규인력을 채용하지 않았고, 한때

200여명을 자랑하던 간병인력은 소개소 폐쇄 직전에는 50여명 안팎으로 줄어들었으며, 그 자리에는 유료소개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병원쪽은 “간병인들에게 유료소개소에 등록해야 다시 일할 수 있다”며 소개업소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들은 모두 병원쪽이 선정한 두 업체 소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서울대병원에는 모두 9곳의

소개업소에서 파견된 간병인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일하고 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길게는 4~5년 이상 꾸준히 간병해온 경우가 많아서

보호자가 간병인을 쉽게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농성 중인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이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류우종)


그러나 병원쪽은 다른 소개업소에서 파견한 간병인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노조에 가입한 서울대병원

간병인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자체적으로 무료소개소를 운영할 테니 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무시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이미 업체 선정이 끝난 상황에서 무조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다음 계약이 이뤄질 때 정식으로 입찰한다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대병원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주장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병원쪽이 노조원인 서울대병원 간병인을 쓰고 있는

보호자와 환자들에게만 ‘해고’를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 ㄱ씨는 “갑자기 간호사가 오더니 간병인 고용이 잘못됐다면서 자신들이

새로 소개해주겠다고 해 거부했다. 며칠 뒤 간호사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간병인을 보냈기에 돌려보냈더니 간호사가 ‘섭섭하다. 다음부터는

협조 못할 수도 있다’며 엄포를 놓아 황당했다”고 털어놨다.

일부 보호자들은 아예 간병인을 계속 쓰게 해달라고 병원쪽에 ‘읍소’하는 형편이다. 부인이 암으로 투병 중인 ㅎ씨는 “환자가 워낙

중환자인데다 인공호흡기까지 하고 있어 오랫동안 돌봐온 간병인 ㅈ씨의 도움이 절실하다. 부인도 가족보다는 간병인과 있을 때 더

편안해하기 때문에,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계속 ㅈ씨와 함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병원에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보호자 ㄱ씨도

“지금 있는 간병인이 남편을 4년 넘게 돌봐왔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와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갑자기 간병인을 바꾸라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편해했다.

하지만 병원은 완강하다. 서울대병원은 간병인 12명이 ‘소개소 폐쇄 철회’를 요구하며 병원 로비에서 농성에 들어가자, 간병인과

보건의료노조 관계자 등 13명을 업무방해와 명의도용, 문화재관리법 위반(시계탑건물 현관 문고리 빠진 것) 등으로 지난 10월6일

고소했다.

살인적 노동을 견딘 댓가가 이것이냐

병원쪽은 또 농성 중인 간병인들이 병원 근처에 ‘얼씬 못하도록’ 병원 1km 주변·병원 내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2월2일, 피신청인 12명 가운데 10명의 병원 안 출입금지에 대해서만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유료 간병인

소개소가 오히려 소개 수수료 지급 등으로 간병인이 환자쪽에 웃돈을 요구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고 시위 사건이 발생한 점도

병원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점, “간병인 문제는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 등 병원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기 때문이다.

간병인 12명은 법원의 결정 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회의실로 ‘농성장’을 옮겼다. 모두가 취약계층의 50~60대 여성

가장인 이들은 일주일에 144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을 하면서도, 시간당 2천원 남짓한 보수를 ‘당연하게’ 여기며 지내왔다. 최경숙

보건의료산업노조 조직2국장은 “서울대병원은 이제 간병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이 책임져야 할 간병조차 사영화로

내몰아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서 합당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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