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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지 5탄 – 이제 운이 다했나봐

28일.

1. 불길한 예감

그동안은 여행이 꽤 잘 풀린 셈이다.

25일 낮 기차 타기전 전화로
“용남아 부산가는 길이야. 만날 수 있나?”
“어.. 정말? … 그래.. 내가 부산역으로 갈게.”

26일 낮 금정산에 오르기 전 전화로
“지혜야 오늘 저녁 대전에 갈 건데.. 만날 수 있나?”
“어.. 정말? … 그래.. 저녁 때 보자.”

무모하리만치 무계획적인 여행이었지만
그런대로 잘 풀린 셈이다.

그러나.. 오늘…
“여보세요. 저 동욱이예요.”
“어 오랜만이야.”
“저 지금 대전이거든요. 대청댐 보고 청주로 넘어가려구요.”
“어 그래? 근데 오늘은 내가 바쁜데..”
“그래요?”
“음…. 그래도 저녁 때 전화할께.”

음.. 이런 여관에서 자면 꽤 쎌텐데….
그리고 청주 가는데 만나지도 못하면 너무 아쉬운걸..
일단 청주에 가서 어떻게든 빌어보자..

2. 독재시절의 어두운 그림자

오늘 우리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으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영부인 이순자 여사를 모시고
이곳 대청호에 어린 잉어 20만 마리를 놓아 기르니
우리의 자연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로워 지리라

– 대청댐 옆 큰 돌, 한국자연보존협회, 1981.3.21

젠장… 아직까지도 이런 돌이 남아있다니… 철거 안하나..

대청댐에서 청주 가는 길에 그 유명한 ‘청남대’가 있죠.
그 청남대가 만들어진 게 전두환 때문이라죠.

박정희 시절 대청댐이 만들어지면서 인근 지역은 수몰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렇게 광고를 했다죠.
대청호가 만들어지면 이 지역이 정말 잘나가는 관광지가 될 거라고..
기대에 찬 주민들이 (물론 제대로 보상 못받고 떠난 사람들도 많겠지만)
돈을 들여 관광시설들을 짓고… 보트도 사고.. 하는 와중에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대청호 인근을 시찰(?)하다
“이 곳 대통령 전용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구만”
하는 한마디에 청남대가 만들어졌다는 실제 이야기가 있죠.

결국 관광지 지정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청남대 덕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일반인은 그곳을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는데….

어쨌든.. 아직까지도 저런 볼성 사나운 돌이 대청댐에 있다는게 짜증이 난다.

어쨌든 … 내가 대청댐에 올라갔을 때에는 첫 시범개방 중이었다.
이전까지는 ‘댐’ 바로 위에는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한다.
2003년 7월 1일부터 2003년 8월 31일까지 두달간 처음으로 시범개방했다고 하는데… 난 운도 좋지… 암 생각없이 간 게 개방기간이었으니.. -_-;

댐 위에 올라가보면
댐 아래의 터빈 근처에 하얀 새들이 떼거지로 모여 있는게 보이는데..
댐 위에서 보면 무지 작아보여서 비둘기인가 했다.
‘근데 설마 비둘기가 여기 살겠어… -_-;’

“저기 저 새들이 뭔가요?”
“백로”
“아.. 생각보다 작네요.”
“저녀석들 터빈에서 나오는 피래미.. 작은 물고기 있지.. 그거 먹으려고 저기 다들 모여 있는거야”
“아… 네”

백로들이 모여있는 반대편이 바로 대청호다.
대청호와 대청댐 바로 아래의 금강의 수위차는 한 10m에서 20m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대청호는 생각보다 크고 맑아 보였다. 뭐 정말 맑지는 않겠지만… -_-;
우리나라 호수가 커봐야 얼마나 크겠나 했었는데…
나름대로 운치도 있고.. 멋있다는 말 밖에는 다른 단어가 안 떠오르네.
그러니 대통령들도 별장짓고 혼자 즐겼겠지. 쳇;;;

3. 청주에서의 방황

대청댐을 내려와 청주쪽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청대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니 충청북도 청원군.

그곳에서 바로 히치를 감행. 5번 째만에 성공.
대청댐에서 청남대 가는 길 오른편에는 대청호가 한참동안 계속 보였는데… 꼬불꼬불 찻길에서 내려다보는 대청호의 모습은 대청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만큼이나 멋있었다. 차가 있다면 꽤 멋진 드라이브 코스일게다.
아저씨는 청남대 들어가는 길 앞에서 세워주셨다.

다시 히치 시도. 20번 정도 끝에 성공.
그 아저씨는 청주 시내까지 태워주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방황
다시 메시지를 날렸다.
“청주에요.”
한참 뒤에 메시지가 온다.
“근데… 오늘 일 땜에 못 볼 것 같다. 미안해.”
다시 메시지를 날린다.
“하룻밤 신세도 질 수 없을까요?”
“밤에 전화해 줄게.”

휴…
근데.. 밤까지 뭐하지…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가고…

7시.
그래 영화를 보자.
‘나쁜 녀석들 2’ 정도면 시간 떼우기 좋지 않을까..
극장에 도착한 건 7시 26분
‘나쁜 녀석들’ 7시 20분에 이미 시작해버렸다. 제길..
꿩 대신 닭.
‘젠틀멘 리그’를 보고 말았다. 쩌비….
돈 아깝다.

9시 10분.
영화도 봤으니 이제 뭐하지…
만화나 보자.. 보다보면 전화가 오지 않을까.

11시경
메시지가 날라왔다.
“오늘 정말 미안해. 못 재워줄 것 같아”
“네.. 알겠어요.”

에구.. 망했다.

4. 내일을 기약하며

전화를 받고 만화방을 바로 나왔는데..
왜이리 깜깜한지..
불켜진 곳도 별로 없고.. 괜히 무서워졌다.

재빨리 여관을 잡고서
(만원 날아갔다… 우쒸..)
그냥 자버렸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속리산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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