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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타임즈] 탄핵정국, 무엇을 할 것인가? by 행인

기획의 부재가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를 절절히 느끼는 요즘이다. 기회가 도래했음에도 이를 기회로 살리지 못하는 기획의 부재는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제자리에 묶어버린다. 보다 크고 넓게 미래를 바라보고 처절한 현실에서 그 미래를 한발짝씩 당겨오는 노력을 해야할 시기이다. 그 시기가 상당히 무력하게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점점 더뎌지는 발걸음에 가슴아프다.

탄핵정국이다. 그래,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며 보수반동들의 우익 쿠데타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반동들의 대면에서 울고 불다가 기절까지 하는 저네들은 미래를 맡길만한 주역들이었는가 아니면 역시 청산해야할 과거의 잔상이었던가? 양비론? 웃기는 소리 하지 말지어다. 그럼 누굴 하나 콕 찝어서 비판해야할 시기인가? 지금 그럴 상황인가? 오히려 탄핵한다고 발광을 한 측이나 그거 막겠다고 구두 벗어 집어 던진 측이나 도찐 개찐이고 둘 다 욕처먹어 싼 그런 넘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욕지거리만 하고 있자니 허전하다. 왜?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퇴행적 행위들에 대해 극복의 지점을 내와야할 주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넘들이 그러니 이렇게 해야한다고 뭔가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궁리하다가 결국은 탄핵만은 막아보자고 나서는 소극적인 몸짓들만이 처연하게 아롱거릴 뿐이다. 허전함은 거기서 출발한다. 남는 것이 없는 비판만으로 이 허기와 목마름이 가시지는 않는다.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다.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을 만들 주체가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작은 사건 하나를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부르주아 정치판의 기획력에 비하여 우리의 기획력은 사건 하나조차 제대로 우리의 담론으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하다. 하청노동자의 분신은 저 남쪽 어느 변방의 에피소드로 전락하지만 청와대에 줄 닿아 있는 누군가에게 손 한 번 뻗었다가 개망신을 당한 어느 대기업 간부의 자살은 언론이 총 동원되어 국제적인 사건으로 전환시킨다.

탄핵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 조순형의 탄핵의도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총선 이후 포스트 조순형의 체제가 의도적으로 열우당과의 당대 당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추미애에게 넘어갈 경우 기존 민주당의 구성원들로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분당의 책임을 교묘하게 구민주당 지도부들에게 떠넘기면서 열우당과의 화해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던 추미애의 경우 탄핵정국을 맞이하여 이제 당대 당 통합으로서 자신의 지분을 가지며 열우당과 합당할 수 있는 길은 막혀버렸고, 바로 이 부분에서 조순형의 의도는 완전히 달성되었다.

한나라당의 경우 문제의 핵심은 최병렬-홍사덕 지도부 체제의 확정이었다. 이미 대표직을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최병렬의 경우 자신의 따가리였던 홍사덕마저 당내 타 주자들에게 먹혀버린다면 완전히 귀 빼고 X뺀 당나귀 꼬라지로 전락할 판이었다. 얄팍하나마 구지도부보다는 합리성을 갖춘 신진사대부들에게 전권이 넘어가는 경우 최병렬은 그대로 5공의 잔재가 되어 정치권에서 뼈도 못추릴 위기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정국을 최-홍 지도부체제에서 성공적으로 완성함으로써 이제 신진사대부들 역시 탄핵정국을 만드는데 동참한 일원으로 포섭하는데 성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대표직을 물러나더라도 직접적으로 신진사대부들에게 주어 터질 일은 당분간 없어질 것으로 최병렬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가 무던히도 제기되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탄핵이라는 하나의 카드를 통해 저들이 노렸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준비했던 치밀한 기획력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경이로운 것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길로는 국회앞에서 혼절 직전까지 갔던 유시민이 태연스럽게 심야 토론프로그램에서 지 할 이야기 다하는 그런 모습 모두가 한 판 쑈, 내지는 국회라는 공간 안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불과하겠지만, 이 거짓으로 점철된 부르주아 정치판의 기획력에 대항할 진보진영의 기획력은 아직까지도 다 죽일 놈들이라는 비난과 항의 집회의 조직 이외에 다른 내용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무기력증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지금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누구 말마따나 국회 해산을 요구하고 민중권력 쟁취를 위한 총파업, 동맹휴업, 전민항쟁을 벌여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탄핵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그나마 정상적인 과정으로 총선을 통과하려고?

결론부터 말한다면 탄핵철회하라는 주장은 우리의 주장이 될 수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번에 결코 탄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인적구성은 얼핏 보면 탄핵을 인정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회가 추천한 3인의 재판관은 모두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추천한 사람들이다. 대법원장이 역시 3인을 추천하는데 이들은 대한민국 법원의 성격상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통령이 추천한 3인은 모두 DJ에 의해 발탁된 사람들이다. 이렇게 볼 때 노무현에게 대단히 불리한 인적자원으로 헌법재판관들이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심사는 재판관들의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출처로부터 결론이 유도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제기한 노무현의 위법사실은 혐의일 뿐이지 위법성이 입증된 것들이 아니다. 이것을 가지고 마치 위법성이 입증되어 죄가 되는 것으로 전제하여 탄핵심사를 한다면 그것은 헌법재판소 자신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뿐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이것을 모를리 없고, 결국 추론에 의한 판정을 할 경우 헌재의 존립 자체에 대한 비난이 폭주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다시 말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두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원래 탄핵이 되었어야만 한다. 이미 그는 파병에 관해 헌법파괴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로써 노무현은 헌법 제5조를 위반했으며,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헌법 제69조를 위반했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부분만으로도 그는 탄핵되어야할 사유가 명백하다.

헌법차원이 아니라 정의의 차원에서 역시 그러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열사들의 분신, 투신 사태,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행사의 보장, 부안사태에서 보여졌던 경찰계엄상황, 불법자금동원을 법적 근거도 없이 합리화 하면서 발생했던 국헌문란 사태, 기타 불과 1년 여동안 보여줬던 각종 국헌문란과 불법행위 등을 보면 이것이 당장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추의 조건이 되지 않을 지라도 더 이상의 방치가 불가능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 두가지 전제를 통해 앞으로 진행해야할 행동을 준비해야한다. 우선 탄핵철회요구는, 탄핵안을 통과시킨 국회에 대한 비판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탄핵이 주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차떼기, 채권떼기, 측근비리를 비롯하여 그들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주절거리는 의회민주주의를 그들 스스로가 파괴했음을 공격적으로 파헤치고 더 큰 비리를 우리 스스로 찾아내면서 그들의 목을 옭아매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부정부패와 비리의 만연 속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우리 농민과 서민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집요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들이 자신들만의 잔치판을 벌리는 동안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갔는지 그것을 밝혀야 한다.

다음으로 정권에 대한 보다 전면적인 공세를 준비해야한다. 노무현은 탄핵되어야할 사람이었음을 더욱 실랄하게 외쳐야 한다. 이라크 민중의 머리 위로 폭탄을 집어던지는 침략전쟁에 대한민국의 군대를 보내 동참하였다는 것, 노동자들의 삶을 지옥같은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는 것, 민중의 요구에 대해 철저하게 폭력으로 대응했다는 것 등. 이러한 사실들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노무현 정권 1년의 실정을 낱낱히 파헤치고 이를 통해 민중이 주인되지 않은 정권이 종국에 어떻게 파멸되고 마는지를 알려내야 한다.

여의도로 가지 말라.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 – 민주당 – 자민련을 비난하는 것 뿐이다. 노란 목도리와 노란 손수건과 노란 깃발 아래서 탄핵한 넘들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벼리는데 숱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거기서 우리의 목소리는 제 반향을 내기가 힘들다. 그곳에서 우리는 문성근의 입에서 가당치도 않게 흘러나오는 열사들의 이름을 들으면서 어이없어할 일밖에는 다른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입에서 작년부터 우리 곁을 떠나간 열사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노란 군대의 머릿 속에 작년부터 올해까지 자기 몸을 던진 열사들의 이름은 바로 그 노란 군대를 해체하라는 포효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그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부터 기획하자.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들, 곶감 빼먹듯이 굴릴대로 굴리는 그런 운동은 이제 접자. 가장 낮은 수위에서부터 가장 낮은 정도로 대중들을 만나고 그들로 하여금 정치적 각성이 없더라도 치에 떨며 분노하게 만들자.

여의도로 가지 말라. 차라리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구멍가게로 가자. 가서 그들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분노하자. 그리고 그 분노의 방향을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돌리자.

갈 수 있는 사람은 울산으로, 부안으로, 명동으로 가자.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만나자.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결국은 이런 식으로 파묻히고 버려지고 있음을 알려내자.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정동영과 임종석의 눈물이, 유시민의 절규와 김근태의 애국가가 모두 허위였음을 느끼도록 하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판을 기획하자. 민주노동당이 되었든 사회당이 되었든 어디가 되었든 좋다. 판을 기획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 나서서 판을 기획하라. 지금은 기회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그런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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