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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시니코프 돌격 소총(AK-47) 이야기

AK로 무장한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요즘 번역하고 있는 책(The Shock of the Old)에서 소총과 AK의 역사를 다룬 부분이 떠올라 일부를 옮겨본다. 30대가 된 우리 세대들에게 소총이란 미군이 사용하던 M-1이나 M-16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사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생산되고,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소총은 구소련에서 제작한 AK의 변종들이었다고 한다. 값싸고 화력 좋은 이 무기는 소련이나 중국 세력권의 국가들뿐 아니라 전세계 해방 운동 세력의 핵심 무기가 되었고, 심지어는 미국이 지원한 게릴라(예: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에게도 공급되었다. 얼마전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에서도 아프리카 주민들이 소유한 총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아프리카에 어마어마하게 보급된 그 총도 바로 AK이다. 이 총으로 인해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 사이의 분쟁은 쉽게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거의 무정부상태의 소말리아 어부들은 자신들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AK로 무장한 경비대가 되었고, 그중 많은 수는 해적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ref]http://deulpul.egloos.com/3554714[/ref]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 소총 시장의 80%를 장악한 AK의 제조공장은 파산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유는 “세계에서 유통되는 AK 가운데 정품은 10%뿐”이라는 것.[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09/2009100901348.html[/ref] 아래는 The Shock of the Old의 일부.
소형 무기는 대포 다음으로 많은 전사자를 낳은 무기로, 20세기 중반까지 끔찍하게도 총 1400만의 목숨을 빼앗았다. 특히 소총은 20세기 군대의 어디에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소총은 광범위하게 사용된 상대적으로 간단한 무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가장 강력한 군대에서조차 변하지 않은 무기의 실제 사례이다. 영국군은 기본적으로 리엔필드 소총과 동일한 SMLE를 20세기의 시작부터 1950년대 말까지 사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500만 대 가량이 제작되었으며, 1945년 거대 인도 군대에서는 그중 250만 대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 영국령 인도 지역에서, 영국제 리엔필드 303 소총은 여전히 도처에 널려있다. 미국군은 1936년부터 1957년까지 M-1을 사용했다. M-1 개런드는 400만 대가 제작되었으며, M-1 카빈은 거의 300만 대가 제작되었다. 이 무기의 변형품인 M-14는 19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이를 대체한 M-16은 새로운 종류의 소총으로, 7.7mm의 리엔필드나 7.6mm의 M-1이나 7.62mm의 나토(NATO) 표준보다 훨씬 더 작은 5.56mm의 총알을 사용했으며, 더 가벼웠다. M-16과 (M-4 카빈을 포함한) 변형품들 역시 엄청난 개수가 생산되었는데, 적어도 700만 대는 되었다. 이 소총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이 수치들은 소련의 (작은 오해를 주는 이름인 AK-47로 흔히 알려진) 칼라시니코프 돌격 소총(Kalashnikov assault rifles)의 수치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칼라시니코프는 1947년에 도입되었다(그래서 AK-47이다). 1947년 모델은 1950년대 말 훨씬 가벼운(3.2kg) AKM으로 교체됐다. 1974년 소련군은 AK-74를 채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5.4mm 탄환을 발사하도록 살짝 개조된 무기였다. 다양한 종류의 칼라시니코프는 전세계에 걸쳐 사용된다. 이 소총은 소련 세력권 군대뿐 아니라 중국 세력권 군대의 무기기도 했다. 이 소총은 해방 운동의 핵심 무기였다. 모잠비크의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는 칼라시니코프에 자신의 깃발을 달았다. 그러나 칼라시니코프는 미국이나 다른 우익 체제를 통해서도 그들이 지원하는 게릴라군에 공급됐는데, 예로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을 들 수 있다. 칼라시니코프의 생산은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7년 이래 제작된 칼라시니코프의 수는 7000만에서 1억 사이로 추정되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수치가 1945년에서 1995년 사이에 생산된 전체 자동소총의 추정치인 9000만-1억2200만 중에서 차지하는 값이라는 점이다. 거칠고 값싸기로 유명한 칼라시니코프는 문제투성이에다 ‘금칠을 한’ 것처럼 보이는 서구의 무기와 대비되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돌격 소총은 강력한 연발 사격을 가능케 해줌으로써 소규모 보병 부대의 화력을 엄청나게 키워주었다. 전투 지역 내 민간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무기를 가지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고, 실제로 미군 부대는 베트남에서 몇 번이고 학살을 거듭했다. 소수의 사망자를 낳았을 사람들 사이의 분쟁은 이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 쉬워졌다. 당연하게도 자동 돌격 소총의 보급(확산, 유포),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확산은 엄청난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자동 돌격 소총은 이러한 흐름을 가능케 해준 가벼운 신식 무기로 자주 지목된다. 어린 소년들은 무거운 구식 무기를 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버마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소년 병사를 육성했는데, 그들에게 제공된 무거운 구식 독일제 G3은 4피트 길이로 어린 몇몇 신병보다 컸다. 어쨌든, 영국 남학생들은 사립학교의 사관 후보생으로 등록하여 무거운 리엔필드 303을 가지고 오랜 기간 훈련을 받고 사격을 했다. 차이를 만든 것은 바로 저렴함과 화력이다.
– David Edgerton, The Shock of the Old: Technology and Global History since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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