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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학적 사고 vs. 개체군 사고

저명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지금은 죽었음)는 유형학적 사고(typological thinking)와 개체군 사고(population thinking)를 구분했다.

  • 유형학적 사고 : 실재하는 것은 유형(type)으로서의 종이며, 각 개체들은 그것의 불완전한 예화를 뜻한다. 즉 변이는 단지 ‘잡음’, 즉 불완전이나 결함이 된다. [variation = type + deviation]
  • 개체군 사고 : 실재하는 것은 각 개체들의 집단이다. 유형이란 그것들의 통계적 추상에 불과하다. [type = average or idealization or abstraction(variations)]

마이어는 다윈의 진화론이 ‘개체군 사고’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이것이 인간 본성에 관한 질문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수업 시간에 나누어준 프린트물에는, 아래의 사르트르의 인용문이 마이어의 주장을 대신했다.

신을 창조자로 생각할 때, 우리는 대체로 그를 초월적인 장인(supernal artisan)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신의 마음 속의 인간이란 개념은 장인의 마음 속의 종이칼[꼭 종이칼일 필요는 없음]의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즉 장인이 모종의 정의와 공식을 따라 종이칼을 제작하듯, 신은 모종의 절차와 개념에 따라 인간을 만든다…. 18세기 철학적 무신론에서, 신이라는 관념이 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존재에 우선한다는 생각은 남았다. 디드로(Diderot)에서, 볼테르(Voltaire)에서, 심지어 칸트(Kant)에서도, 우리는 도처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발견한다. 인간은 인간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인간 본성”이란, 인간(human being)의 개념으로서,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따르면 각각의 인간은 보편 개념, 인간(Man) 개념의 특정한 사례가 된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간이 존재하고, 자신을 마주하고, 세계에서 출렁이는(surge up) 것이 먼저고, 그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그 나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 사르트르(Sartre), “Existentialism is a Humanism” (1946)

* 이 인용문 덕분에, 아래 포스팅에서 나열된 주제중 다소 생뚱맞아 보였던 8번과 9번 주제가 드디어 말이 되는 질문으로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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