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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재작년 여름 대구 범어도서관에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소개하는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수성인문학@Suseong”이란 제목으로 진행된 전체 강연 시리즈의 컨셉은 강연자마다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것으로, 나는 섭외를 받을 때부터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소개를 부탁받았다. 나는 섭외를 받자마다 “이타성의 진화”에 대한 도킨스의 설명을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책의 제목이 주는 차가운 인상과 달리, 도킨스는 책에서 인간의 이타성에 대한 혁신적인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강연 자료집에 수록된 강연 스크립트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 이타성의 진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정동욱 (경상국립대 철학과)

도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 출판된 진화생물학 대중서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도킨스는 자신의 책이 진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기존의 진화 이론을 재서술한 것에 불과하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도킨스는 기존의 진화 이론을 왜 다시 쓰려고 했던 것일까? 도대체 진화론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쓴 것이고, 이를 위해 어떤 새로운 관점을 도입한 것일까?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진화론과 이타적 행위의 존재가 어떻게 양립가능한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더 좋은 답을 하기 위해 집필된 책이며, 『이기적 유전자』는 그 답을 위해 생존경쟁을 개체나 집단 사이의 경쟁이 아닌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으로 간주해야 함을 보였다. 바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바라볼 것을 주문한 것이다. 

『종의 기원』과 이타성의 퍼즐

진화론의 실질적인 시작점은 1859년 출판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출판 이전에도 생명의 진화 가능성을 주장한 책은 있었으나, 다윈의 『종의 기원』만큼 설득력을 갖춘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은 진화의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는 한편, 그 진화 방식에 대해서도 두 가지 주장을 제시했다. 

첫째, 다윈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따라서 생명의 역사는 공통 조상을 뿌리로 하는 나무 형태로 그려질 수 있다. 오늘날 밝혀진 정보들도 이용해 얘기를 하자면, 인간의 조상은 대략 6천만 년 전쯤 개의 조상과 만나고, 또 6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달팽이의 조상과 만난다. 또 11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옥수수의 조상과 만나고, 40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박테리아들의 조상과도 만난다(그림 1). 결국 모든 생명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사촌지간이 된다.

생명의 나무
그림 1. 생명의 나무.

둘째, 다윈은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이 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어떤 개체들에 유용한 변이들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그로 인해 그 개체들은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을 좋은 기회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대물림의 강력한 원리를 통해 그것들은 유사한 특징을 가진 자손들을 생산할 것이다. 나는 이런 보존의 원리를 자연선택이라 불렀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그림 2.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그림 2를 통해 설명하자면, 부모 세대로부터 태어난 개체들은 부모를 닮아 서로 비슷하긴 하지만,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즉 한 세대의 개체군 내에는 다양한 변이들(variations)이 존재한다. 그림 2의 회색 오리로 이루어진 1세대의 자식들로 구성된 2세대 개체군 내에는 다소 밝은 색의 개체와 다소 짙은 색의 개체도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짙은 색의 개체가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라면, 짙은 색의 개체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식들로 구성된 3세대 개체군 내에는 회색 개체와 다소 짙은 색 개체뿐 아니라 더 짙은 색 개체들로 구성된다. 그런데 여전히 원래의 회색 개체들보다 짙은 색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에는 짙은 색 개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몇 세대를 거치는 사이에 회색 오리들로 이루어진 개체군은 점차 짙은 색 오리들로 이루어진 개체군으로 변하게 되고, 바로 이것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인 것이다.

다윈은 이러한 자연선택의 아이디어를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얻었고, 그 흔적은 『종의 기원』의 다음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생존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이것이 생존경쟁으로 이어지는데, 조금이라도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기 좋은 기회로 이어지고 자연적으로 선택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 세계에서 파괴적 압력은 (인간 세계보다) 엄청나다.

예컨대 한 쌍의 메뚜기가 200개의 알을 낳는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으로는 그중 겨우 2개의 알만이 성체가 되어 번식에 성공할 텐데, 그들이 겪는 100대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생존경쟁은 인간이 겪는 생존경쟁보다 훨씬 심한 것이다. 다윈이 보기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이러한 냉혹한 생존경쟁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자연 세계의 냉혹하고도 비정한 경쟁에 대한 다윈의 강조는 상반된 반응을 야기했다. 일부 이론가들은 비정한 자연의 진화 과정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고자 했고, 소위 ‘사회 다윈주의자’들은 동물 세계의 진화를 위해서 경쟁이 필요한 것처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냉혹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월러스 등의 사회주의자는 생존경쟁이 인간 사회의 발전 동력이라는 것을 수용하기 꺼려했고,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이를 보이기 위해 인간에게 이타성이 존재함을 보이고, 고도의 협력 없이는 인간 사회의 발전이 불가능했음을 보였다. 또한 인간과 동물의 세계에서 협력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을 밝히는 데 애를 썼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남을 돕는 데서 보람을 느끼고, 일개미는 평생을 여왕개미가 낳는 알을 위해 헌신하며, 미어캣 무리 내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경계를 서는 개체가 존재한다. 이렇게 인간 세계와 동물의 세계에서 협동과 이타적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러한 자기희생적인 이타성이 자연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까?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특성만이 자연적으로 선택되어 대를 이을 수 있는데 반해, 이타적 특성은 오히려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특성이 아닌가? 그러한 특성은 자연적으로 선택 불가능한 특성으로 보인다. 우연히 그러한 이타적 성향을 가진 개체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개체는 결국 다른 개체들에 비해 자손을 남기지 못할 것이고, 그 이타적 성향은 개체군 내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겠는가?

다윈의 집단 선택론과 그 약점

이러한 이타성의 퍼즐은 보다 협력적인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매우 핵심적인 문제였고, 다윈 역시도 『인간의 유래』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답은 개인 사이의 경쟁 대신에 집단 사이의 경쟁을 가정하는 것이었다. 즉 집단 사이의 경쟁을 고려할 경우, 이타적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이 이기적 개체들로 구성된 집단보다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제안이었다. 이타적 개체가 개인 간의 경쟁에서는 불리하더라도, 이러한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개체들의 헌신 덕분에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강력할 수 있다. 집단 간 전쟁을 가정할 때, 이타적 개체들의 집단과 이기적 개체들의 집단 중 어느 집단이 유리하겠는가? 

그러나 집단 선택론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타적 개체들의 집단이 이기적 개체들의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집단이 성장 또는 재생산된다 하더라도, 그 이타적 개체들의 집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그림 3). 부모 세대의 집단이 모두 이타적 개체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그 자식 세대의 집단 내에는 이기적 성향의 개체가 일부 포함될 수 있다. 부모-자식 사이의 대물림 과정은 완전한 복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변이가 항상 허용되며, 때로는 급진적인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타적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 속한 이기적 개체는 무임승차의 이득을 누림으로써, 집단 내 경쟁에서 승리하여 집단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릴 것이다. 즉, 이타적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적은 수의 변이 출현에도 쉽게 무너진다는 점에서 진화적으로 불안정하다. 개체의 이타성이 그들의 집단에 이득을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이타성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림 3. 이타적 집단의 불안정성.

이러한 관찰에 기초하여, 메이너드 스미스는 어떤 특성 또는 전략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특성 또는 전략이 “진화적 안정 전략(Evolutionay Stable Strategy, ESS)”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특성이 ESS라면, 그 특성을 가진 개체가 다수인 개체군 내에서 그 개체들은 그것의 대안적인 특성을 가진 개체들이 일부 출현하더라도 여전히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다윈의 집단 선택론은 이타적 특성이 ESS임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해법이었다.

해밀턴의 해법 : 포괄적응도

이타성의 퍼즐을 처음으로 만족스럽게 해결한 사람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이었다. 그는 일단 이타적 유전자라는 것을 “다른 유기체의 적응도는 높이면서 자기 주인의 적응도는 낮추는 형질을 담은 (가상의) 유전자”로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적응도(fitness)란 쉽게 말해 번식률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이타적 유전자란 자기 주인의 번식률을 낮추면서 남의 번식률을 높이는 희생적인 유전자로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수가 줄어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밀턴은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 퍼즐을 해결한다. 여기서 핵심은 다음과 같다. 어떤 유전자의 대물림 가능성은 그 주인의 생존과 번식뿐 아니라, 그 유전자와 동일한 복사본을 가진 다른 개체들의 생존과 번식에도 의존한다. 어떤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자손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그 유전자의 작용으로 그 친척들을 많이 살릴 수 있다면, 그 유전자는 그 우회로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의 가까운 친척일수록 그 주인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확률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을 ‘근연도’라고 하는데, 부모와 자식 사이 또는 형제자매 사이는 1/2의 근연도를 가지고, 삼촌과 조카 사이, 조부모와 손자 사이는 1/4의 근연도를 가지며, 사촌 사이에는 1/8의 근연도를 가진다(그림 4). 다시 말해 특정한 유전자의 관점에서 내 주인의 조카가 동일한 유전자 사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1/4이고, 내 주인의 사촌들이 동일한 유전자 사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1/8이다. 결국 어떤 유전자의 진정한 적응도는 자기 주인의 자손 외에도 자신의 사본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친척들까지 함께 고려한 포괄적응도이다.

그림 4. 나와 친척들의 근연도.

이러한 통찰에 기반하여, 해밀턴은 어떤 이타적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유전자에 의한 총이익이 그 유전자에 의해 그 주인이 치루는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단, 총이익을 계산할 때에는 수혜자가 얻는 이익과 수혜자와 주인 사이의 근연도(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를 곱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의 규칙이 도출된다.

rb>c (r은 수혜자와 주인 사이의 근연도, b는 수혜자의 이익, c는 주인의 비용)

이 규칙에 따르면, 이타적 유전자가 자기 주인을 희생시키면서 4명의 조카를 살리는 성향을 가졌다면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4명의 조카 중 1명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명의 조카를 살리기 위해 자기 주인을 희생시키는 매우 희생적인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줄어들어 사라질 것이다. 

결국 개체의 관점에서 희생적인 특성이라 하더라도, 그 특성이 만약 유전자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이익이라면, 그 특성은 다음 세대로 전해져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해밀턴의 설명은 이타성의 진화에 대한 최초의 만족스런 설명을 제공했는데, 이 설명의 성공은 개체나 집단의 관점이 아닌 유전자의 관점에 기반했으며, 이는 리처드 도킨스에게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도킨스의 핵심 착상 : 유전자의 관점에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서문에서 밝혔듯이, 진화 과정은 자신의 번식에 이익이 되는 무언가가 자연적으로 선택된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과정이다. 다만, 해밀턴의 통찰을 이어 받은 도킨스는 그 이익의 궁극적인 수혜자가 집단이나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포괄적인) 이익이 개체의 직접적인 이익과 충돌할 수 있다는 해밀턴의 통찰을 일반화하여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론을 재기술하는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1976년 출판된 『이기적 유전자』였다.

그림 5. 『이기적 유전자』의 한국어판.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과 선택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재서술된다.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사본을 남기기 위해 다른 유전자들과 경쟁하며, 그 경쟁에서 무슨 수단을 쓰든 승리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따라서 유전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가정하면, 다시 말해 마치 유전자가 자기 자신의 복사본을 최대한 남기려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하면, 수많은 진화적 현상들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이해할 때 가장 유의할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전자의 이기적 목적은 개체의 생존 또는 번식 목적과 상충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는 (자신의 사본을 최대화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더라도, 그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오히려 이타적일 수도 있다. 물론 많은 유전자가 자신의 복사본을 극대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자기 주인의 생존과 번식을 돕는 것이지만, 유전자의 복사본은 주인과 그 자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척들을 포함해 여러 개체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가 복사본을 증식하는 전략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둘째, “이기적”이라는 말은 비유로서, 유전자가 어떤 의식이나 의도를 정말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도킨스는 개체를 유전자가 타고 있는 차량(vehicle, 운반자)으로 비유함으로써, 개체를 유전자에 의해 조종당하는 수동적인 존재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도킨스는 개체가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유전자가 의도를 가진 능동적인 존재라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단지 유전자가 올라탄 개체(차량)는 (대체로) 자신을 타고 있는 유전자들의 복사본을 최대화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개체의 행동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한편 유전자의 관점에서 재서술된 진화 과정은 진화의 오랜 역사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질문과 답을 제시한다. 진화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진화의 오랜 시간을 고려할 때, 개체나 집단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자연선택을 통해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바로 유전자로, 유전자야말로 수명이 없는 불멸의 존재인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다양한 설명력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진가는 수많은 사례에 대한 일관된 설명력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개미의 불임과 이타성을 생각해보자. 왜 일개미들은 자신이 직접 알을 낳지 않고 여왕개미의 알을 돌보는 데 지극 정성일까? 이는 개미의 독특성 성 결정 시스템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그림 6에서처럼, 개미는 2n개의 염색체를 가지면 암컷, n개의 염색체를 가지면 수컷으로 결정된다. 1세대의 암컷(F1, 여왕개미)이 자신의 염색체만을 재조합하여 염색체 n개짜리 무정란을 낳으면 그 알은 성장하여 수컷(M2)이 된다. 반면 수컷(M1)과 교배한 염색체 2n개짜리 수정란을 낳으면 그 알은 암컷(F2)이 된다. 이때 엄마(F1)와 딸(F2) 사이의 근연도는 0.5인 반면, 자매들 사이, 즉 F2와 F2 사이의 근연도는 그보다 높은 0.75이다. 따라서 암캐미에 속한 유전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복사본을 최대로 남기는 전략은 자식을 낳는 것보다 엄마(여왕개미)의 자손을 돌보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일개미의 독특한 이타성은 유전자의 포괄적 이익을 통해 설명된다.

그림 6. 개미의 성 결정 시스템.

유전자의 포괄적 이익은 결국 포괄적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만 계산 가능하지만, 몇 가지 전형적인 고려사항들은 쉽게 알 수 있다. 첫째는 혈연적 근연도로, 이타성은 주로 근연도가 높은 상대에게 특히 잘 나타난다. 둘째는 미래의 번식 가능성으로, 유전자의 포괄적 이익은 (다른 것이 같다면) 미래의 번식 가능성이 높은 쪽의 이익에 더 높은 가중치를 준다. 예컨대 부모와 자식 사이의 혈연적 근연도 0.5로 상호간에 똑같지만, 이타성은 주로 내리 방향으로 더 잘 나타난다. 셋째, 이타적 행동은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있음을 식별할 수 있는 증거의 확실성이 높을수록 더 잘 나타난다. 예컨대 초록 수염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동시에 초록 수염을 가진 다른 개체를 돕는 성향도 가진다면 그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더 잘 전해질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진화는 “모-아니면-도” 게임이 아닌 비용-편익 게임이다. 이익이 있다고 무조건 선택되는 것도, 손해가 있다고 무조건 도태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선택되는 것은 순이익(총편익-총비용)이 큰 유전자로서, 자연선택이란 포괄적 비용-편익 분석기처럼 작용한다.

친족을 넘어서는 이타성

자연에서 이타성은 주로 친족에 한정되어 나타난다. 그럼에도 친족을 넘어서는 이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친족을 넘어서는 이타적 행위는 꾸준히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고, 동물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이타성이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원숭이나 새들 중에는 자기 손을 잡기 어려운 머릿니를 서로 잡아주는 협력적인 행동이 친족을 넘어서서 나타나곤 한다. 이런 협력적 행동도 진화적으로 설명 가능할까?

한 개체는 상대 개체의 머릿니를 잡아줄 수도 있고(협력), 잡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배신). 나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는 무엇일까? 상대가 나에게 협력할 경우, 나는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협력하는 것보다 이득이다. 한편, 상대가 나를 배신할 때에도, 나는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협력하는 것보다 이득이다. 즉, 상대가 협력하든 배신하든, 나는 배신하는 것이 협력하는 것보다 이득이다. 물론 상대도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다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머릿니를 잡아주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라고 한다. 

친족을 넘어선 일반적인 협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러한 죄수의 딜레마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도킨스가 소개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문제에 진화론적 게임 이론을 적용해 본다. 우선 상이한 전략의 개체들로 구성된 개체군을 가정하고, 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체별 점수 변화를 살핀다. 물론 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1회성이라면, 배신이 최선이다. 그러나 만약 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반복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여전히 배신이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를 식별하여 나의 행위를 상대에 따라 차별화할 수 있다면? 이때는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이 만든 게임의 세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한다. 둘째, 상대의 이전 행위를 기억하여, 이를 나의 다음 행위에 이용할 수 있다. 즉 상대의 행동에 따른 조건부 전략이 가능하다. 이러한 세팅 하에서 어떤 전략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까? 도킨스는 협력자에게는 협력을, 배신자에게는 배신하는 전략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전략이 배신자의 출현에도 유지될 수 있는 ‘진화적 안정 전략(ESS)’으로서 진화 가능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치학자 알셀로드는 『이기적 유전자』 10장에 소개된 협력의 진화 가능성에 영감을 받아 죄수의 딜레마에 대한 다양한 전략을 공모 받아 컴퓨터로 시합을 벌였고, 그 연구 결과를 1984년 『협력의 진화』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 12장에 그 연구 결과를 수록했다. 그에 따르면,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전략들은 다음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마음씨 좋은 전략이 그렇지 않은 전략보다 우수했다. 여기서 마음씨가 좋은 전략이란 상대가 배신하기 전에는 무조건 협력하는 전략을 의미했다. 둘째, 관대한 전략이 그렇지 않은 전략보다 우수했다. 여기서 관대한 전략이란 상대가 배신하더라도 끝까지 보복하기보다 적당한 시점에서 용서를 해주는 전략을 의미했다. 특히 최고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전략은 팃포탯(TFT)이라는 전략이었는데, 이 전략은 직전에 배신한 경우에만 배신을 하고, 그 외에는 항상 협력했다. 즉 직전 판 이전의 먼 과거의 일은 다 잊어주는 전략이었는데, 이 전략은 수많은 다른 전략과 상대할 때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평균적으로는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팃포탯과 같은 전략을 일반적으로 “호혜성 전략”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전략은 왜 우수할까? 호혜성 전략을 채택한 참가자가 일정수 이상인 게임 환경에서는, 자신의 협력적 행위가 미래에 보답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이타적 행위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적응도를 높여준다. 반면 비협력적 행위는 호혜성 상대로부터 협력 거부라는 “처벌”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적응도를 하락시킨다. 그래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이 주는 차가운 인상과 달리, 도킨스는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라며 협력적이고 이타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문화적 복제자 밈과 인간의 선견지명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생명의 수많은 퍼즐을 풀 수 있음을 보였으나, 그렇다고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하진 않았다. 특히 인간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이기적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임에도, 너무나 다양한 문화와 빠른 변화 속도를 가진다. 도킨스가 보기에도, 이는 유전자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는 새로운 층의 문화적 복제자, 즉 밈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단지 생물학적 복제자인 유전자의 자연선택과 더불어, 문화적 복제자인 밈의 자연선택이 결합된 과정이다. 또한 도킨스는 인간의 복잡한 뇌가 가진 선견지명은 맹목적인 유전자나 밈의 폭정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타적 특성은 유전자의 진화적 산물일까, 밈의 진화적 산물일까, 아니면 둘을 극복한 의식적 선견지명의 산물일까? 또한 이에 대한 참된 과학적 설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적 규범과 어떤 관계일까?

참고 : 이기적 유전자 강연 슬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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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aist 제작

studying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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