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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은 누구인가? by 진중권

일단 정몽헌씨의 자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 그 일반적 관점은 cbs 컬럼을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그의 죽음의 정치적 악용을 중단하고, 그의 죽음에서 햇볕정책을 계속하되 앞으로는 가능한 한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비록 당파는 달라도 이 정도 수준의 얘기라면 저는 보편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제 관점을 좀 더 특수화하여 ‘정몽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 들어가 봅시다.

1.

이에 대해서도 당파적 이해에 따라서 견해가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일단 두 개의 코드로 이 문제를 조명해 봅시다. 먼저 ‘민족’이라는 코드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두 개의 입장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주의적 버전의 정몽헌관(觀)이 있습니다. 가령 조갑제에게 정몽헌은 ‘김정일이라는 민족반역자에게 국부를 퍼다 준 국가반역자의 종범’ 정도가 되겠지요. 그래서 ‘그의 비참한 최후를 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하나는 주사파들의 민족주의적 버전입니다. “정몽헌 회장이시여, 금강산의 영신이 되소서.” 많이 깨는 얘기죠?

서로 저렇게 대립을 해도 국가주의적 버전이나 민족주의적 버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재벌은 경제 주체로서 본질적으로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정주영은 실향민이나 정몽헌은 실향민이 아닙니다. 기업은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다’는 코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측되는 이윤에 대한 동기에서 움직여지는 겁니다. 국가주의적 버전이나 민족주의적 버전은 그 사업에서 ‘이념’만을 보고, 그것으로 경제를 재단하고 있다는 공통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정몽헌은 대북사업이 초기에는 힘들어도 곧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이며, 그 이윤을 현대가 독점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대북 경협을 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북에 송금도 하고, 정치자금을 정가에 뿌리는 무리를 했던 겁니다. 그의 대북 경협에서 주요한 것은 사업에서 얻어지는 이윤의 독점이고, 그 밖의 동기는 지극히 부차적인 겁니다. 그런데 국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은 이 부차적인 것의 이념적 의미를 과장하여 한쪽에서는 그를 국가반역자로, 다른 쪽에서는 그를 금강산 영신으로 만드는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거죠.

2.

정몽헌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다른 하나의 코드는 ‘계급’입니다. 모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맑스의 말대로, 정몽헌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는, 그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며 수많은 노동자를 걷어먹여 살리는 기업가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런 이를 잃은 것은 한국 경제에 큰 손실이며, 그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은 듯한”(!) 슬픔에 빠져 있다는 식이지요. 특히 속초시의 경우에는 시 전체를 먹여 살리는 가장의 죽음처럼 슬퍼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더군요.

반면 소위 ‘좌파’의 관점에서는 그가 지배계급의 일원, 그것도 족벌경영의 상징인 재벌의 아들이자, 노조 탄압으로 악명 높은 현대계열사의 회장에 불과하겠지요. 게다가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회사 돈을 빼내어 북으로 보내고, 정치권에 뿌림으로써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고, 그 결과 거기에 고용된 이들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반노동자적인 인물이겠지요. 결국 자업자득, 따라서 그의 죽음에 그렇게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일단 기업인 한 명이 자살을 했다고 마치 국상이라도 당한 양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데에는 분명히 뭔가 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가 자살을 했을 때는 마지못해 단신으로 처리하던 언론매체가, 정몽헌이 죽자 “오늘 뉴스는 연장하여 80분 하겠습니다.”라고 멘트를 할 때, 저는 “아, 우리는 정말 재벌공화국에 살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정몽헌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도,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것도, 속초시를 먹여 살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일 뿐이죠.

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정몽헌의 반노동자적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도 별로 적절해 보이지는 않네요. 먼저 그의 자살 사건은 그의 반노동자적 성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데다가, 그는 살아 움직이는 행동의 주체가 아니라 이미 죽어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고인입니다. 제 윤리적 직관은 무슨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한 잘못은 죽음으로써 덮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3.

한 마디로, 정몽헌을 국가반역자로 매도하거나, 통일의 영신으로 숭배하거나, 나라를 먹여살리는 가장으로 추앙하거나, 반노동자적인 부르주아로 낙인찍는 것은 모두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죠. 그는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냥 그 선에서 그의 죽음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그냥 그 선에서 그에게 조의를 표하면 안 될까요?

저 밑에서 ‘***’가 이상한 소리를 해 놓았는데, 나는 이 친구와 불크라 사람들은 좌파 사상교육의 실패를 보여주는 생동하는 산 증거라고 봅니다. ‘좌파’라는 낱말이 닭대가리의 동의어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제가 볼 때에 이 사안에서 좌파가 할 일은 죽은 이의 죄를 물으며 그를 ‘부르주아’라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경직된 자세가 얼마나 우리와 생각이 다른 시민들에게서 많은 동의를 얻어내겠습니까? 좌파는 그와는 좀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좌파들은 정몽헌이 범한 오류를 객관적으로 지적할 수 있겠지요. 가령 정도에서 벗어난 그의 무리한 대북 경협으로 인해 계열사의 경영이 힘들어지고 (구조조정 얘기가 벌써 나오더군요),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것 정도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겠지요. 아울러 이런 일이 없도록 노동자들이 경영을 감시하거나 거기에 참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

한 마디로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정도면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좌파질이란 옷 벋고 자기 빤쓰 색깔을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친구들 대개 하도 오랫 동안 안 빨아서 그 빤쓰가 빨간 색인지 회색인지 구별도 안 돼요. 제게 좌파란 매일 터지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신속하게 그것을 바라보는 좌파적 시각을 세운 후, 그것을 누구나 다 알아듣는 일상의 공용어로 표현할 능력을 의미합니다.

“정몽헌은 누구인가? by 진중권”의 3개의 댓글

  1. 요약하자면 ‘정몽헌’개인을 성토하는 것은 바람직한 문제해결을 이끌어낼 수 없다..정도인가..
    찬반을 떠나 신랄하게 글을 잘 쓰는군.
    ‘좌파질이란 옷 벋고 자기 빤쓰 색깔을 자랑하는게 아닙니다’ -_-)
    근데 ‘재별이 우리나라 먹여살린다’라는 식의 이데올로기는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2. 좀 요령껏 선전선동하란 말 같은데….자기도 잘 못하면서..ㅡ,.ㅡ 근데 문제는 좌파적 시각과 효과적 언술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윤리적 면죄부로 모든 이성적 접근을 봉쇄하는 대중심리가 아닐까요? 글구…내가 보기엔 자살 아닌 것 같은데…냄새가 나..ㅡ.ㅡ~

  3. 이 정도면 꽤 잘 한 거 아닌가. -_-;
    어쨌든… 내가 보기에도 이번 정몽헌 씨의 자살은 뭔가 냄새가 나긴 해. 도대체 뭘 숨기기 위해 자살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야. 하지만, 원인규명도 안된 상태에서 섣부른 비난보다는 이런 식으로 죽은 이의 여러 측면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꽤 의미있는 작업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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