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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누리] 이영훈 교수 재론 (아흐리만에 대한 반론) by 진중권

이영훈에 관한 아흐리만의 글을 읽고…

그 동안 시간이 없어서 여기에 글을 쓰지 않았는데, 아흐리만님이 공격을 해오셨으니 반론을 하는 게 예의겠지요. 일단 논의의 지형부터 확인하고 넘어갑시다. 아흐리만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번 사태는 ‘전달’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2) 따라서 이영훈 교수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부당한 마녀사냥이다.

반면 나의 논지는

(1) 이번 사태는 그저 ‘전달’의 실패가 아니라 좀 더 깊은 원인이 있다.
(2) 하지만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난은 뿅망치로 족하다.

내가 그 글을 썼을 때에는 진보누리에 올라온, 이영훈에 대한 비난과 옹호의 글을 모두 읽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의 토론상황을 직접 확인한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영훈을 비난하는 글은 과도하게 뜨거운 반면, 그를 옹호하는 글은 논리적으로 옹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론은 위에 요약한 두 문장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요. 아흐리만님의 글에는 정작 제가 이영훈의 논지를 재구성할 때  “이 분이 대체 왜 이런 얘기를 하나” 의아해 했던 부분의 해명이 고스란히 빠져 있습니다. 대단히 유감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로 그 부분을 해명할 수 없었기에 위에서 말한 그런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아흐리만의 재구성이 맞다면, 이영훈 교수의 발언 중에서 제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것은 하나의 물음과, 두 개의 유비입니다. 물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1.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아흐리만은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영훈 교수는 조선총독부에서 정신대를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을 동원하는 데에 조선인도 한몫 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일제통치에 대해 만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경기”(sic!)를 일으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일제 시대 때 벌어진 모든 범죄가 오로지 일본 사람에 의해서만 저질러졌다는 믿음을 전제해야 할까요? 그랬다면 “친일파 진상규명”이라는 얘기가 애초에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친일파’란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을 의미하니까요.

일본의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비난하자 누군가 옆에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합시다.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일본정부가 강제로 지배한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서 을사5적이라든지, 그 밖에 일제에 협력한 조선인들의 예를 드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경기”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무엇 앞에서 놀라는 것일까요? ‘식민지배는 쪽바리들만 한 줄 았는데 거기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협력했다’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진리 앞에서 갖는 놀라움일까요요? 아니면 “친일파 청산하자”는 맥락에서 일본식민지배의 죄악성을 얘기하는데 느닷없이 “거기에는 한국인도 참여했다”고 말하는 사오정 어법에 내포된 함의의 황당함 앞에서 느끼는 “경기”일까요?

2.

“그리고 최근에 어떤 연구자가 한국전쟁 때 위안소가 있었다는 걸 증명했는데 한국군대가 일본군대를 배워와서 한국전쟁 때 그런 일을 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 조용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은 아흐리만의 글에서 통채로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징후적’인데, 왜냐하면 그가 통탄해 마지않는 여론의 마녀사냥(?)은 바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문제가 되는 이 부분이, 그릇된 해석의 폭력으로부터 이영훈을 옹호하겠다고 나선 아흐리만의 재구성에서는 송두리채 빠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친척들 중에도 당시에 정신대 가는 것을 피하려고 조혼을 했다가 고생하신 분이 계신다고 하더군요. 조선인  “팸프”가 무서워 시집을 일찍 갔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가의 권력을 이용한 강제성이 있었다는 얘기지요. 포주 무서워서 조혼을 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모두 조혼 바람이 불어야 할 것입니다. 아흐리만의 말대로 정신대=성노예라는 것은 이영훈 교수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영훈 교수는 이것을 반례로 제시한 것일까요?

이것이 반례로 기능하려면, 한국군이 운영한 위안소도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한 위안소와 그 본질이 같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 중에 한국정부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멀쩡한 처녀들을 성노예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반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한국 정부가 국가권력의 강제로 제 나라 처녀를 성노예로 만들었나요?

3.

“그러고 그 뒤에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 미군들의 위안부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이 부분도 이영훈의 발언에 대한 여론의 해석을 결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발언입니다. 하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아흐리만의 재구성에는 이 부분의 해석 홀라당 빠져있습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그 물음과, 방금 언급한 이 두 개의 유비만 없다면, 이영훈 사건은 아예 일어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이 발언에 대한 아흐리만의 해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 위안부를 만드는 데에 어떻게 합법적인 지원을 했는지 궁금하군요. 50만명씩이나 위안부로 만들드는 것은 엄청난 “지원”일 텐데, 이를 지원하는 부처는 어디이며, 예산은 얼마나 들었고, 어떤 인력이 동원되었지요?

이 부분이 논거로 기능하려면, 역시 정신대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지원은  미국 위안부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논거’로 성립을 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게 논거가 되려면, 조선총독부의 정신대 정책 내지 관리는 곧 우리 정부에서 미군에 제공하는 편의와 같은 “합법적 지원”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4.

따라서 여기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1) 이영훈 교수는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지만 논술실력이라는 면에서는 똥, 오줌을 못 가리는 분이다. 하지만 동료인 양동휴 교수의 말대로 이영훈 교수가 “군계일학”으로 보일 정도로 토론회에서 잘 했다면,

(2) 위의 두 개의 유비는 그저 잘못된 예, 혹은 말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잘못된 예, 혹은 말실수가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정신대가 본질에 있어서 한국군 공창, 혹은 미군 위안부와 같은 것이라 발언을 한 것이지요.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가 하나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래디컬한 페미니스트인 경우입니다. 즉,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매매춘 자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차피 모두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한국군 성노예, 미군 성노예는 문제 안 삼으면서 왜 일본군 성노예만 문제삼느냐, 그건 제대로 반성하는 자세가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영훈 교수가 미군 위안부도 기꺼이 “성노예”라 부를까요? 하지만 저는 이영훈 교수가 그 정도로 래디컬한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영훈 교수가 아니라 차라리 아흐리만의 견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종군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로 잡혀갔음을 강조하고 그들을 매춘여성과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것은 일본군의 전쟁 성노예 문제를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데에는 효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매춘부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자발적 성매매’라는 환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일본군 종군위안부와 미군부대 위안부를 서로 아무 관계없는 양 깔끔하게 나눠놓는 것이 외려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아흐리만의 페미니즘이 제게는 매우 느닷없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페미니즘은 고작 논리적 곤궁에 처한 이영훈 교수를 구원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글쎄요, 하지만 아흐리만의 이런 주장에 정작 페미니스트들이 “고맙다”고 동의해줄까요?

이렇게 역사청산이라는 논제에서 발생한 난점을 엉뚱하게 페미니즘을 끌어들여 피해가다 보니, 이 분은 좀 무리한 결론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아흐리만의 주장입니다.

“이영훈 교수 발언의 핵심은 정신대 문제가 해방 이후 한국의 여러 성매매 문제의 뿌리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의할만한 주장이다. 사실 과거청산을 운위하는 이유는 그 과거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구속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신대가 해방 이후 한국의 여러 성매매 문제의 뿌리요 원인이라…. 이 주장은 상당히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성매매는 일반적으로 정신대가 없는 다른 나라에도 보편화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정신대 문제에 관해 한국 사람들이 먼저 반성하지 않아 오늘날 성매매가 창궐한다는 얘기도 좀 들어주기 뭐 합니다. 이 무리는, 아흐리만이 이영훈의 망언에 억지로 심오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니 빚어지는 것이겠지요.

5.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아흐리만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엇던 것입니다. 그 대신, “그러면 저분은 대체 왜 저러냐”라는 물음을 던지고 내가 얻어낸 답변은 이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이영훈 교수가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맹아론/ 식민지근대화론”의 대결을 아주 적절하지 못하게, 한 마디로 주책없이, 정치권의 논의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이다. 따라서 뿅 망치 정도의 질타로 족하다.>

이영훈 교수가 알아야 할 것은, 친일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학계에서는 민족주의가 대세라서 그 편향으로 인한 폐해가 심할지 몰라도, 현실의 정치권에서 대세를 이루며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로 이어지는 국가주의 세력이지요.

정치권이 아니라 당장 서울대만 보십시요. 이영훈 교수는 그 망언을 하고도 잘리지 않지만, 김민수 교수는 직언을 했다고 그 자리에서 잘려버립니다. 이게 현실이지요. 이렇게 맥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은 임지현 교수에게서도 일정하게 나타납니다. 참고로, 저는 자본주의 맹아론에 그리 찬동하지 않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양쪽 다 역사철학에 뭔가 fault가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아흐리만은 이영훈 교수가 그저 “전달”에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나, 저는 그게 아니라 그 실수가 좀 더 깊숙한 오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어쨌든 아흐리만님이 자신의 재구성을 좀 더 plausible하게 만들려면, 정작 문제가 됐던 발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을 해당 발언을 듣고 분노했던 사람들의 것보다 더 타당하고 그럴 듯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ps.1

아, 방금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인데, 제가 제대로 본 모양입니다. 참고로, 서울대 경제학과 홍기현 교수가 영남일보에 기고한 글 중에서 정신대 관련 부분입니다.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요? 만약 이것이 서울대 경제학과의 학풍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이번에 아흐리만이 사안을 얼마나 잘못 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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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현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 문제를 살펴보자. 일제시대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제하에서 일본군대나 정부에서 행정체계를 통해서 종군위안부를 동원한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일본의 법치수준과 행정조직 상태를 보면 이 점은 신빙성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말하자면 종군위안부는 군인을 대상으로 민간인 업자들이 성매매를 알선했기 때문에 생겼다. 당시 종군위안부가 지급받은 금액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성매매 대가보다 훨씬 높아서, 모집책들이 서울의 사창가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을 돌면서 젊은 여성들을 모아 갔다. 상당수의 종군위안부는 몇 년 정도 일하고 돌아갔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방치된 여성들은 대가로 받은 군표를 현금화하지 못하고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제하 우리의 경제사정이 열악하여 우리 여성들이 자발적이든 주위의 강권에 의해서든 성매매 업소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핵심적 사항이며, 이러한 상태를 스스로 떨쳐내지 못했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결국 우리가 경제성장을 하고 일본과 대등한 경쟁력을 가질 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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