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0일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혹은 결혼 1주년 기념식을 무사히 마쳤다. 원래는 여기 쓸 말이 참 많았었는데,시간이 지날수록 귀찮기도 하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더 귀찮아지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주례 없이 어떻게 결혼식을 하고 싶다더니 왜 갑자기 안 한다고 그러냐?”고 부모님이 물으셨고, 나는 “그냥 귀찮아서”라고 얘기했다. 더 이상의 긴 얘기 없이 토요일은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다음날 정신을 차리신 부모님은 “결혼식은 해야지” 하며 우리의 대답을 계속 기다렸다. 심하게 다그치시진 않았지만, 엄마랑 아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고 거실엔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만 철면피 깔고 참았으면 결혼식을 아예 안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인데, 그 잠시 동안의 무거운 침묵을 못이긴 나는 결국 “결혼식 할게요”라고 답해버렸다. 원주에서 허락을 받는다고 해도 인천의 장모님 앞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을 생각하니 끝까지 우길 힘이 나질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내 부모님한테 No 하는 건 쉬워도 장모님께 No 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소동 덕분에 소득은 있었던 것 같다. 결혼식을 안할까봐 걱정이 되었던 엄마가 “그럼 원주에서 말고 너희들이 하고 싶다던 서울역에 있는 그 예식장에서 해. 원주에서는 버스 한 대만 대절할게”라며 협상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협상 카드 때문에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결혼식 준비는 엄마의 협상안대로 진행되었다.
2. 결혼식 날짜와 장소 결정하기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날, 그곳에 전화를 걸어보니 우리가 예식을 원했던 2월에 한달 동안 내부 공사를 한다고 했다. 난감했다. 장소 찾으러 또 귀찮게 알아봐야 하나? 인터넷으로만 찔끔 검색하면서 하루 이틀을 그냥 보내는 사이, 걱정이 된 엄마가 나한테 전화를 했다. “내가 거기에 전화해보니까 1월 마지막주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예약이 없대. 그때라도 할래? 어떻게 할래?” 아하 1월 말에 결혼식을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다. 1월 말이라… 지금은 1월 13일. 2주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잠깐만. 민아씨랑 상의해보고 다시 전화할게.” 사실 그때 난 옛 룸메이트 춘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친구의 차를 타고 동해로 가고 있었다. 마침 차가 문막 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부인님과 전화로 상의한 후 엄마한테 전화했다. “결혼식 1월 30일 낮에 거기서 할게!”
바로 다음날 부인님과 나는 장모님과 함께 서울역 트레인스에 찾아가 계약을 해버렸다.
3. 양측 부모님 사이에서 조율하기
어느날 장모님께서는 전화로 원주집 주소를 물어보셨는데, 원주에 이불을 보내신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장모님은 막무가내셨다. “주소 빨리 불러” 하며 다그치시는 장모님께 나는 결국 주소를 불러드리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원주 엄마로부터 이불을 받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걱정스런 전화를 받아야 했다. 선물 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이런 의례를 앞두고서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장모님께서 이불 보내는 건 막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참 장모님께 약하다.
결혼식에서 폐백도 없애기로 했다. 시댁 어른들께만 인사를 드리는 것이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식 끝나자마자 손님들 모르는 장소에서 한복 갈아 입고는 또다른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원주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우린 폐백 안해” 라고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말씀드렸더니 “얘네들은 자기들 맘대로야” 하면서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그냥 넘어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장모님께서 폐백은 해야 한다고 우기셔서 무척 난감했다. 나름 머리를 쓴다는 게 “폐백 하려면 신부측 어른들도 폐백 받으셔야 해요” 했더니, 장모님께서는 “그럼 요즘은 다들 그렇게 하지” 하셔서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드셨다.
많은 경우 장모님께서는 나와 민아씨에게 “되도록이면 시댁 어른들 말씀대로 해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우리가 시댁 어른들과 자꾸만 부딪혀서 혹시 민아씨가 미움받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말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결국 폐백 문제는 “시댁에서는 이미 폐백 안하는 걸로 알고 계신다”고 말씀드려서, 겨우 장모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양측 어머님들은 이것저것 불안한 것이 많으셨다. 당시 살림집에 살림을 채워넣어야 하는 시점에서, 장모님은 이불, 베개, 식기, 가구 등등등을 빨리 사주시겠다며 보채셨다. 우리는 느긋하게 맘에 드는 거 찾아서 사겠다고 했지만, 장모님께서는 신혼 살림을 장만하는 일을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가끔은 맘에 드는 물건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 서두르시는 장모님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했다.
한편 원주 엄마는 결혼식 행사 진행에 대한 불안감이 크셨다. 예식장소는 비좁지 않은지, 버스는 한 대만 대절하기로 했지만 혹시 사람들 다 못타서 욕을 먹지는 않을지, 손님들이 식당에 앉은 채로 예식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소란스럽지는 않을지, 얘네들이 식을 알아서 준비한다고 하는데 혹시 어른들 보기에 너무 장난스럽지는 않을지 등등등…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에게 전화를 해 사소한 준비상황까지 체크하는 바람에, 우리의 스트레스 지수를 증폭시켰다.
이렇듯 사소한 일들로 감정이 긁히는 일이 잦아졌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도 많아졌다. 아마 결혼식을 하기로 결정하고서부터 결혼식까지의 약 2주간은 우리 둘이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에게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결혼식을 더 늦게 했다면 서로 싸우는 기간도 연장되지 않았을까? 2주 안에 결혼식을 해치우겠다고 했던 결정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ㅋㅋ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결혼을 준비하게 될 너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최소에 포함시켜줘서 고맙구나. 애 데리고 간 게 너무 힘들어서 살짝 후회도 했지만^^;; 참 의미있게 한다 싶은 결혼식이었어. 누나도 제대로 했으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거야. 난 완전 전형적인 결혼식을 했는데, 부모님들과 타협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라 시도도 하지 않았거든.ㅎ 어차피 지방에서 하는 거고, 원래 아는 사이인 양가 어머니들께서 직접 연락해서 모든 걸 처리하시길래 조용히 구겨져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한 것 같아.ㅋㅋ 하지만 결혼식 문화가 언젠가는 너희 결혼식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결혼식을 부모님 뜻대로 하도록 신경 안 쓰는 것도 좋은 선택지인 것 같아요. 부모님과 다투는 데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보다 의미 있는 곳에 투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다행히 우리 부부의 경우엔 양가 부모님들이 우리 뜻을 쉽게 따라 주셔서 부모님과 부딪히는 스트레스가 무척 적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하나도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말이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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